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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 논란 및 이슈 정치사 총정리 !!

by 일상공유자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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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치인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생애 및 논란 이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정치인 인물을 다루는 포스팅은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이나 지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있는 대로 세간의 평가대로 적어보겠습니다. 

 

 

 

나경원 그는 누구인가?

 

나경원 전 의원, 논란 및 이슈 정치사 총정리 !!
나경원 전 의원, 논란 및 이슈 정치사 총정리 !!

 

이름 나경원 1963년 12월6일 생, 서울 영등포 노량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적은 충북 영동으로 본관은 나주 나 씨입니다. 실제로 할아버지도 전남 영암군 도포면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흥신학원의 설립자이며 이사장인 나채성 씨로 4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계성초, 송의여중, 서울여고를 졸업하였으며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법과대학을 나왔습니다. 당시 서울법대 동기인 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재호씨와 결혼을 1988년도에 하였고 이 둘은 캠퍼스 커플이며 83년 처음 만나 집이 같은 동으로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연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부부가 고시생 시절 결혼하여 모두 사범시험에 합격한 드물지만 정말 대단한 케이스입니다.

 

자녀는 1남 1녀로 딸 김유나 양은 다운증후군이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에겐 그로인한 상처가 있었으며 이후에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본 직업은 판사이며 사법연수원 24기이고 95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4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이후 99년 인천 지방법원 02년 서울행정법원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정치인 나경원이 되기까지

 

 

한편 02년 제 16대 대선기간 당시 이회창 후보의 요청에 따라 판사를 그만두며 한라당에 입당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현직여성판사가 그만두고 정치계로 들어온 것은 매우 드문데 나경원 전 의원이 두 번째고 첫 번째는 추미애 전 장관입니다.

 

 

정치에 입문하며 나경원 의원은 같은 판사 출신이였던 이 회장 후보를 두고 '소신 판결을 해온 분으로 법관시절부터 존경해 왔다'라고 발언하며 정치의 아버지이자 법관의 선배로 이회창 전 총재에게 감사함과 존경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으며 이회창이 낙선하였고 이로 인해 나경원 전 의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법무법인 바른에서 실제 변호업무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요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2003년  7월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선출되며 다시 정치계로 등장하였고 이후 활동하며 17대총선 공천심사위원 이후 04년 비례대표 11번으로 국회입성에 성공합니다. 비례 초선이 된 후 교수출신 당선인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책을 공부하며 정치인의 자질을 키워나갔습니다. 또 이때 자신의 딸의 장애를 밝히며 장애인 관련 정책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장애인 관련 법규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 장애성년 후견법인, 특수교육진흥법 일부개정안 등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외에 10건의 장애인 관련 특수교육법안을 공동발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점차 미녀 정치인으로 얼굴을 알린 나경원은 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비례가 아닌 서울 중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한나라당 정조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의원을 맡기도 하며 정치적 역량을 넓혀나갑니다.

 

 

 

 

2010년에는 서울시장을 출마하기 위해 경선에 도전 오세훈 후보에게 패하며 오세훈 선대위원장으로 합류 선거를 성공으로 이끕니다. 이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문제로 사퇴하며 그에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에 물러남과 동시에 치뤄진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지며 서울시장에 패하게 됩니다. 이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10.26 재보선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하자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을 아주 잠시 맡기도 하였습니다. 

 

19대 국회의원은 서울 중구가 아닌 서울 동작구을에서 당선되었는데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동작구 을 지역의 보궐선거에 출마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꺽고 당선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경원은 새누리당 내 유일한 여성 3선 의원이라는 중거물급 정치인이 되었고, 상임위는 외교통일 위원회를 배정받아 추후 외교통일 위원회 위원정에 당선되는 등 정치적 입지를 계속 넓혔습니다. 이후 같은 동작을에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이때 이슈로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 찬성 결의하였습니다. 이후 열린 의원 총회에서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내 대표로서는 정치적 협상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민주당의 전략 공천 이수진 후보에게 7.2%차이로 패배하며 5선에 실패합니다. 

 

 

 

나경원 이슈 및 평가 

 

 

나경원은 대체적으로 계파 색을 크게 띄지 않는 정치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친박, 친이등 자신의 계파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에게 가장 최선을 선택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의 의견 충돌로 인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직 해임, 연이은 대통령이 자신의 해임결정이 본의가 아닐 것이라는 실언으로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공격이 극에 달하자,

충분히 당 대표 후보로써의 경쟁력을 갖추고도 출마하지 않으며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한 입장문에서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은 내부적으로 논란은 다소 있으나 소낙비를 정면으로 맞는 것이 아닌 적당히 사과하되 자신의 자존심 또한 정확하게 지켜내는 현명한 소낙비를 피해 가는 전략을 선택한 바 있습니다.

 

 

또 호감 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이다 발언을 하며 '주어는 없다' , '노무현의 아방궁'등의 발언으로 상대방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가 강합니다. 보통 정당과 상관없이 인기가 있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나경원 전 의원은 정당에 상관없이 비호감이 높은 정치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수 내부에서는 옅은 계파색으로 뚜렷한 지지층이 없고 외부로는 다소 과격한 발언으로 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큰 이슈가 있을때 마다 좋은 선택을 하며 어느덧 정치 신인에서 정치 중진이 된 나경원 전 의원, 정치인생 중 지금이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과연 국민의 힘 공천을 받아 다음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그의 귀추가 주목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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