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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by 일상공유자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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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노엘의 아버지 장제원 의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치적 의도나 사견 없이 사실로 알려진 이슈만 최대한 적어 보도록 할게요 ~^^

 

장제원 의원은 누구?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장제원 1967년 4월13일 생입니다. 부산시 동래구에서 태어났으며 인동 장 씨입니다. 아버지 장성만 씨와 어머니 박동순 사이에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부산동래초, 서울여의도중, 고 중앙대 신방과 대학원 역시 중대 신방과 석사졸업하였습니다. 장제원 의원의 집안은 사학재단을 소유하여 국회의원되기 이전에는 집안이 소유한 동서학원이 관리하는 대학인 경남정보대학 수석 부학장과 부산디지털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여담. 어릴 때 이후 서울 여의도에서 계속 살아와 현재 말투에도 경상도 말씨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안경을 쓸때와 벗을때가 이미지가 매우 다른데 이영자를 닮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치인 장제원의 길

 

 

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당시 현역 의원인 권철현 의원과 공천권을 두고 공천을 받아내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출마 만 40세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정치적 라인을 친이계(이명박 전 대통령)로 두고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등을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08년 미국산 소고기등 촛불시위 때 유모차 부대를 두고 그 시위를 주도한 시민을 국정감사에 초대하여 감사 중 해당 시민을 상대로 날카로운 발언을 하여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잘 나가던 초선의원의 불출마 사건

 

 

그리고 약 10년이 다 지난 2017년 SBS 러브 FM 정봉주의 정치쇼에 표창원과 진행을 하는 중 해당 이슈가 다시 거론되었고 당시 함께 방송 중인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총장에게 사과하고 해당 시민에게 사과를 전달해 달라며 10년이 다 지난 후 해당 사건을 마루 하였습니다. 

 

 

2012년에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불출마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디도스 사건으로 당시 한나라당 (현 국민의 힘) 박근혜 비대위 체재로 전환하면서 맞는 첫 전국단위 선거였는데 장제원 의원의 맞상대로는 당시 대선 후보로 떠오르던 문재인 후보였고 초선인 장제원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맞서기엔 다소 약간 체급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자신이 속했던 산악회 회원들에게 220만 원 정도의 식사와 75만 원 상당의 선물을 돌린 것이 추후 선관위에 고발되었기에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출마를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번외로 이후 장제원의 빈자리에는 박근혜 키즈로 불리던 손수조 변호사가 전략공천을 받았지만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였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장제원의 불출마와 손수조의 패배로, 당시 야권에서는 차라리 손수조 대신 장제원이 나왔다면 선거가 어떻게 될지 몰랐을것이라며 조심스러운 평을 하였고 위에 서술한 대로 장제원은 지역구 여러 모임과 행사를 참여하며 그리고 가문 소유의 경남 부산 지역 대학의 요직을 역임하며 지역에서는 꽤나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위 건에 대해 재판을 진행하였고 이때 장제원 의원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종편에서 평론가와 방송인을 활동하며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정치생명을 이어 나갔습니다.  

 

박근혜 탄핵과 함께 요동친 그의 정치 철새 이슈

 

 

이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현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또다시 손수조가 전략 공천을 받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을 나와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이 된 이후 유승민, 윤상현, 안상수, 주호영, 강길부, 이철규 등과 다시 복당 하였습니다.  [1차 철새]

 

이후 박근혜 탄핵과 관련하여 새누리당 내에서는 박근혜 수호하는 쪽과 탄핵이 맞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졌고, 탄핵이 더 맞다고 판단한 장제원 의원은 탈당하여 바른정당으로 소속을 옮겨 바른 정단 부산시당위원장과 당 대변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제원 의원의 바른 정당행은 개혁보수의 아이콘이며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아들 래퍼 노엘의 성매매의혹이 터지며 모든 직을 내려놓고 사퇴하였습니다. 

 

 

이후 바른정당 내에서는 이대로 바른 정당의 길을 갈 것 인가? 다시 새누리당과 합칠 것인가를 두고 내부의견 대립이 있었으며,  이를 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현 국민의힘) 바른 정당 대표 유승민 사이에 합의가 불발되자, 2017년 5월 1일 바른 정당 내에서 단일화파였던 장제원 의원 외 12명은 탈당하여 홍준표를 지지 다음날인 5월 2일 자유한국당에 재입당을 신청하였습니다. [2차 철새]

 

2차 철새 사건 이후 후 폭풍

 

자유한국당에 재입당을 당대표 유승민과 상의도 없이 이뤄지자, 탈당 몇 일 전 한 방송에 출연하여 바른 정당을 도와달라고 말했던 장제원 의원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이 일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폐쇄하였습니다. 이후 지난 4월 부산서면에서 유승민 지지를 호소하던 유세 사진이 나오며 3일도 안 되는 시점에 모든 입장을 바꾸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 한 장제원 의원의 태세전환이 매우 큰 비판을 받으며 바른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개혁 보수의 아이콘에서 조금씩 그를 밉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내에서도 장제원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배신자 라는 프레임으로 남아있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박근혜 탄핵을 앞장선 장제원을 받아주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우택 당대표 권한 대학이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며 사태를 일단락되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장제원의원 그 어느 쪽에서도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 비호감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게다가 아들 노엘의 성매매 이슈등 일탈이 계속되면서 국민적인 지지 당내에서의 지지도 모두 최악을 치닿는 결과를 받게 됩니다.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이후 2017년 11월13일 자유한국당의 수석대변인에 임명되며 친홍행보를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를 매우 강하게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조금씩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서고 동료를 배신한 정치인 이미지를 지우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너무 강했던지 역풍이 부는데 제7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맞아 경찰을 광견병 걸린 개에 비유하는가 하는 막말등으로 큰 비난을 받았고 이후 강한 몇몇 발언이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끼치며 지지율 하락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한 방송에서는 국민이 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식의 발언으로 비호감 지수를 점점 높여가며 결국엔 자신의 지역구인 사상구의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을 모두 민주당에게 내주며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거 이후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때는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고 김종인 주호영 지도부 체재 때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탈이념 중도화 노선에 반대하며 김종인 위원장을 비난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바른정당 탈당, 김종인 비난으로 이어지는 개혁보수로써의 장제원을 모두 이탈했음을 직감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국민의 힘으로 당명을 변경하였고 자신이 추최 한 포럼에 안철수를 초대하고 동시에 공천에 불복하여 나간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 무소속 4인방을 다시 당으로 영입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안철수의 서울 시장 단일화에 노골적인 지지를 보내며 김종인을 정치적으로 타격하려 했지만 안철수가 단일화에 패하며 다소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대선국면에 접어 들며 윤석열 국민캠프에 합류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으로 참여하였으나 역시나 발목을 잡는 혈육 노엘의 음주운전 및 경찰 폭행 사건으로 모든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장제원 의원 비호감이 된 이유? 이슈 총정리!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반려하였으나 이미 국민의 심판을 맛본 바 있는 장제원의원은 겸허히 자리를 내려놓고 캠프에서 2선으로 후퇴합니다. 당시 후퇴를 안 할 수도 없던 게 활발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장제원 의원 박탈 지지가 20만 명을 넘었고 문재인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했던 선거에서 자칫 질 수 있다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정말 크게 무너지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또 대선 당시 당대표였던 이준석은 언론에서 자주 표현하던 익명의 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의견을 보며 이른바 '윤핵관'이라 표현하며 장제원과 권성동등을 지칭하며 대립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결국 대선을 0.7%의 신승으로 이기게 되었고 윤석열은 사퇴한 장제원 의원을 위로하듯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며 다시 그를 등용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쌓아온 그의 비호감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는 사퇴하고 김대기 실장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이후 당 내부의 사모임 '민들레'등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이준석을 비롯한 당시 당 관계자들의 매우 심하게 반대하였고 심지어 중앙대 동문이자 사적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 권성동원내대표까지 반대하자 민들레에서 손을 떼기도 합니다. 그러나 2020년 6월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을 다시 만들며 결국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마치며

 

 

자신의 정치 생명을 지금까지는 잘 이어온 장제원 의원, 하지만 그 생명을 잇기 위한 자신의 결단이 국민과 당원들이 볼때는 철새 내지는 박쥐로 비치며 다소 안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 3선에 성공하며 지역구는 매우 잘 관리한다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근데 도와줘도 힘든 정치판에서 또 다른 족쇄가 되어 전 국민적 비난을 만드는 노엘도 장제원 의원을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 되겠네요. 장제원 의원이 이런 시련들을 이겨내며 정치권에서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듯합니다. 장제원 의원의 앞길을 응원하며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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